전체 글110 동아리 선배 스타킹 (레즈물 19금) 동아리방의 공기는 오후의 잔열로 후끈거렸다. 과제를 핑계로 끝까지 남은 건 나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방금 전 보충 수업을 하러 간 선배의 흔적과 나뿐이었다. 사물함 옆, 선배가 갈아신고 간 스니커즈 위로 무심하게 벗어 던져진 검은색 고탄력 스타킹이 보였다.나는 홀린 듯 그 앞으로 다가갔다. 평소 차갑고 완벽해 보이던 선배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 스타킹은 주인에게서 막 떨어져 나온 허물처럼 축축하고 생생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내 손등이 먼저 반응했다. 나일론의 매끄러운 감촉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 때, 나는 이미 이성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나 역시 매일 스타킹을 신으며 내 발끝에서 올라오는 그 묵직하고 쿰쿰한 향기에 남모를 희열을 느끼곤 했으니까. 하지만 타인의 것, 그것도 내가 동경하는.. 2026. 3. 21. 스타킹 페티쉬 19금 1장 : 세탁실의 그림자민준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니 죽을 때까지 무덤으로 가져가야 할 기묘한 습관이 있었다. 그것은 정갈하게 차려입은 누군가의 뒷모습 뒤에 숨겨진, 지극히 개인적이고 농밀한 '흔적'을 찾는 일이었다.민준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모두가 퇴근한 늦은 밤의 오피스텔 공동 세탁실이었다. 건조기에서 막 꺼낸 빨래들의 뜨거운 열기 사이로, 그는 가끔 주인을 잃고 떨어진 나일론 조각을 발견하곤 했다.그에게 팬티스타킹은 단순한 의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루 종일 누군가의 피부에 밀착되어 그 사람의 온도와 활동, 그리고 긴장감을 고스란히 흡수한 '기록지'와 같았다. 그는 구석진 벤치에 앉아, 조심스럽게 그 얇은 올 사이로 배어 나오는 특유의 향을 들이켰다.살짝 섞인 살구색 파우더 향, 그리고.. 2026. 2. 12. 겨울의 심장을 가진 봄 그녀는 마치 겨울의 심장을 가진 봄 같았습니다.그녀가 걷는 길 위로는 늘 서늘한 서리가 내려앉는 듯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몸짓, 타인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는 듯한 도도한 턱선은 마치 차갑게 식은 달빛을 깎아 만든 조각상 같았지요. 사람들은 그녀의 화려한 외벽 앞에서 압도당한 채, 감히 다가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그 고고한 실루엣을 훔쳐볼 뿐이었습니다.하지만 그 차가운 유리 성벽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누군가 건넨 사소한 농담에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을 때, 혹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어올 때, 세상의 계절은 순식간에 뒤바뀌었습니다. 서늘했던 눈매는 이내 봄날의 호수처럼 일렁이며 온기를 머금었고, 그 다정한 목소리는 꽁꽁 얼어붙어 있던 상대의 마음을 속수무책으.. 2026. 1. 2. 뫼비우스의 달콤한 띠 지아의 배는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같았다. 현우는 그 부드러운 감촉을 좋아했다. 퇴근 후 지아를 품에 안고 그 말랑한 온기를 느끼면 하루의 긴장이 다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온기 뒤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대화가 숨어 있었다."현우 오빠, 나 오늘 찍은 사진 봤어? 진짜 멧돼지 같지 않아?"지아가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며 울상을 지었다. 현우는 익숙하게 방어 기제를 가동했다."무슨 소리야, 귀엽기만 한데. 나는 지금 네 모습이 제일 좋아." "거짓말. 나 예전보다 15키로 넘게 쪘어. 오빠 친구들 부인들은 다 날씬하던데... 나 내일부터 진짜 다이어트한다? 도와줄 거지?"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10kg을 감량하고 식단을 유지 중인 현우에게 다이어트는 의지의 문제였기에, 사랑하.. 2026. 1. 2. 앨범 속의 빈자리 지수에게 결혼은 '우리가 함께 고른 색들로 도화지를 채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식장 계약서를 흔들며 웃는 민석의 얼굴을 본 순간, 지수는 자신의 손에 들린 붓이 꺾여버린 기분을 느꼈다."지수야, 여기 진짜 어렵게 예약했어. 네가 바쁘니까 내가 발품 좀 팔았지. 잘했지?"민석은 아이처럼 칭찬을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지수의 머릿속엔 자신이 꿈꿨던 높은 층고의 홀이나 은은한 조명 대신, 민석이 결정한 '가성비 좋은 지하 홀'의 차가운 바닥이 먼저 그려졌다. 지수는 입술을 깨물었다."나랑 한마디 상의도 없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에이, 너 편하라고 한 거지. 나중에 가보면 너도 좋아할 거야. 다 똑같아, 식장은."'다 똑같다'는 말. 그 말은 지수의 취향과 고민, 그리고 결혼에 대한 설렘을 단숨에 '.. 2026. 1. 2. 기울어진 저울 재우의 눈동자에는 언제나 지수만 담겨 있었다. 식당에서 냅킨을 챙겨줄 때도, 길을 걷다 차가 오면 조심스레 어깨를 감쌀 때도 그의 눈은 ‘사랑해’라는 말을 소리 없이 내뱉고 있었다. 사귄 지 이제 겨우 50일. 재우는 이미 지수와 함께할 먼 미래를 꿈꾸는 듯했다.“지수야, 다음 달에 우리 바다 보러 갈까? 네가 좋아하는 조개구이 맛집 알아놨어.”해맑게 웃으며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는 재우를 보며 지수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재우의 열정은 100도씨의 펄펄 끓는 물 같았지만, 지수의 마음은 미지근한 물조차 되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었다.지수는 문득 두렵다. 재우가 쏟아붓는 사랑의 양만큼, 자신도 그만큼의 사랑을 반납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목을 조여왔다. 그가 다정하게 손을 잡을 때마다 지수는 설.. 2026. 1. 1. 온기 없는 평행선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지안은 옆자리에 앉은 준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깍지를 껴보기도 하고, 손바닥을 긁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가벼운 토닥임뿐이었다. 벌써 8개월째다. 남들은 불꽃이 튈 시기라는데,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늘 지나치게 쾌적하고 건조했다.“오늘 영화 재밌었지? 딱 내 스타일이더라.”준호는 환하게 웃으며 지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화는 잘 통했다. 개그 코드도 맞고, 맛집 취향도 비슷했다. 친구로 지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파트너였다. 하지만 지안은 갈증을 느꼈다.집 앞 가로등 밑, 이별이 아쉬워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시간. 지안은 슬쩍 준호의 옷깃등을 잡으며 그를 빤히 바라봤다. 입술이 닿기를, 조금 더 깊은 온기가 전해지기를 바라는 무.. 2026. 1. 1. 환상의 유효기간 85일. 누군가에게는 아직 불꽃이 튈 시기였지만, 수아에게 그 시간은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민낯이 드러나는 시간이었다.“야, 쟤 좀 봐. 옷 입은 꼬라지 진짜 안습이다. 관리 좀 하지.”현우가 낄낄거리며 창밖을 지나는 학생을 가리켰다. 수아는 대답 대신 커피 빨대만 만지작거렸다. 현우는 자신을 향해서는 세상에 없을 사랑꾼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사랑해”, “너밖에 없어”라며 애정 표현을 퍼부었고, 수아는 그 압도적인 사랑에 취해 그와의 연애를 시작했다. 썸 탈 때 밤새 통화하며 나누었던 설레는 대화들, 나를 위해 달려오던 그의 열정은 분명 진심이었다.하지만 단둘이 있을 때의 ‘사랑꾼’ 현우와, 세상 속의 ‘무례한’ 현우 사이의 간극은 점점 수아를 지치게 했다.수업 시간, 흐름을 끊고 툭툭 던지는 현우.. 2026. 1. 1. 마침표는 내가 찍는다 연말 특유의 들뜬 캐럴 소리가 식당 안을 채웠지만, 지수는 눈앞의 스테이크가 고무 씹는 맛처럼 느껴졌다. 맞은편에 앉은 태윤은 방금 전까지 직장 동료와의 통화에서 '프로페셔널'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참이었다."지수야, 이 와인 어때? 내가 고른 건데 역시 내 안목이 좋지 않냐?"태윤이 기세등등하게 물었다. 사실 와인은 지나치게 떫었다. 하지만 지수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기색을 보이면 태윤의 얼굴은 금세 굳어질 것이고, "넌 와인을 즐길 줄 모른다"며 훈계를 시작할 것이다. 그의 기준은 언제나 본인의 기분이었으니까."그냥 그래."지수의 짧은 대답에 태윤의 미간이 즉각 꿈틀거렸다."너 오늘 태도가 왜 그래? 연말인데 좀 맞춰줄 수 없냐? 아, 하긴. 우린 애초에 너무 다르긴 해. .. 2026. 1. 1. 당신이라는 계절이 내게 머물러서 (남자의 시점)세상은 늘 무채색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내 평범한 궤도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출근길, 늘 타던 지하철 4호선의 덜컹거림과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그 틈바구니 속에서 나는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꽂았다. 우연히 흘러나온 선율 하나가 귓가를 간질였다. 아주 평범한 피아노 곡이었지만, 그 음표 위로 불현듯 그녀의 옆모습이 겹쳐졌다.‘아.’나도 모르게 나지막한 탄성이 터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 슬픈 일도, 특별히 기쁜 일도 없었는데 가슴 정중앙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입꼬리가 멋대로 느슨해졌다.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처럼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내 마음속엔 이미 그녀라는 햇살이 환하게 번지고 있었으니까.회사를 나와 길을 걷다 멈춰 섰다. 오늘따라 바람이 .. 2025. 12. 23. 이전 1 2 3 4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