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지안은 옆자리에 앉은 준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깍지를 껴보기도 하고, 손바닥을 긁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가벼운 토닥임뿐이었다. 벌써 8개월째다. 남들은 불꽃이 튈 시기라는데,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늘 지나치게 쾌적하고 건조했다.
“오늘 영화 재밌었지? 딱 내 스타일이더라.”
준호는 환하게 웃으며 지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화는 잘 통했다. 개그 코드도 맞고, 맛집 취향도 비슷했다. 친구로 지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파트너였다. 하지만 지안은 갈증을 느꼈다.
집 앞 가로등 밑, 이별이 아쉬워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시간. 지안은 슬쩍 준호의 옷깃등을 잡으며 그를 빤히 바라봤다. 입술이 닿기를, 조금 더 깊은 온기가 전해지기를 바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하지만 준호는 지안의 이마에 가벼운 '쪽' 소리를 남기고는 한 걸음 물러났다.
“조심히 들어가. 내일 연락할게.”
현관문을 닫고 들어온 지안은 화장대 거울 앞에 섰다. '내가 매력이 없나? 향수를 바꿔야 하나? 아니면 내가 너무 밝히는 사람인 건가?' 자책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실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가 자신을 뜨겁게 원하고 있다는 확인, 이성으로서의 갈구, 그 에너지가 필요했을 뿐이다.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연애는 서서히 영혼을 갉아먹었다. 준호와 함께 있을 때는 즐거웠지만, 돌아서면 공허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공기 중에 흩어지는 활자 같았고, 스킨십 없는 다정함은 '연인'보다는 '가족'이나 '절친'에 가까웠다.
지안은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성욕의 차이가 아니라, 표현의 방식이 너무 다른 걸까? 아니면 우리는 그냥 연애라는 이름의 우정을 나누고 있는 걸까?'
좋은 사람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지안에게 연애는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서로의 가장 은밀한 부분까지 공유하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이끌림. 그것이 거세된 관계에서 지안은 점점 시들어가는 꽃이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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