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특유의 들뜬 캐럴 소리가 식당 안을 채웠지만, 지수는 눈앞의 스테이크가 고무 씹는 맛처럼 느껴졌다. 맞은편에 앉은 태윤은 방금 전까지 직장 동료와의 통화에서 '프로페셔널'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참이었다.
"지수야, 이 와인 어때? 내가 고른 건데 역시 내 안목이 좋지 않냐?"
태윤이 기세등등하게 물었다. 사실 와인은 지나치게 떫었다. 하지만 지수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기색을 보이면 태윤의 얼굴은 금세 굳어질 것이고, "넌 와인을 즐길 줄 모른다"며 훈계를 시작할 것이다. 그의 기준은 언제나 본인의 기분이었으니까.
"그냥 그래."
지수의 짧은 대답에 태윤의 미간이 즉각 꿈틀거렸다.
"너 오늘 태도가 왜 그래? 연말인데 좀 맞춰줄 수 없냐? 아, 하긴. 우린 애초에 너무 다르긴 해. 넌 너무 감정적이고, 난 좀 더 이성적인 타입이니까."
태윤은 마치 대단한 진리라도 발견한 양 팔짱을 꼈다. '다르다'는 말. 그건 태윤이 상대의 입을 막고 싶을 때 던지는 전용 방패였다. 그 방패 뒤에서 그는 언제나 이기적으로 굴었고, 지수는 매번 그 방패를 뚫으려다 상처 입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지수는 가방 속에서 미리 준비한 작은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 안에는 그가 좋아하던 브랜드의 향수와 짧은 메모가 들어 있었다.
"태윤아, 네 말이 맞아. 우린 너무 달라."
지수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너는 네 기분이 세상의 기준인 사람이고, 나는 그런 너를 참아주는 게 사랑이라고 믿었던 사람이지. 근데 이제 그 역할, 사표 내려고."
태윤의 입술이 경련하듯 움직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지수는 그가 입을 열어 '전문가다운' 반박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말까지 고마웠어. 네 고집, 네 기분, 네 기준들... 이제 다 네가 원하는, 너랑 똑같은 사람한테 가서 마음껏 뽐내면서 살아."
식당을 빠져나오자 차가운 겨울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등 뒤에서 태윤이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지수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거리는 연말의 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지수는 처음으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만 생각하며 가벼운 걸음을 옮겼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새해가 시작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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