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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짧은 글

마침표는 내가 찍는다

by 감성좋아 2026. 1. 1.

연말 특유의 들뜬 캐럴 소리가 식당 안을 채웠지만, 지수는 눈앞의 스테이크가 고무 씹는 맛처럼 느껴졌다. 맞은편에 앉은 태윤은 방금 전까지 직장 동료와의 통화에서 '프로페셔널'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참이었다.

"지수야, 이 와인 어때? 내가 고른 건데 역시 내 안목이 좋지 않냐?"

태윤이 기세등등하게 물었다. 사실 와인은 지나치게 떫었다. 하지만 지수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기색을 보이면 태윤의 얼굴은 금세 굳어질 것이고, "넌 와인을 즐길 줄 모른다"며 훈계를 시작할 것이다. 그의 기준은 언제나 본인의 기분이었으니까.

"그냥 그래."

지수의 짧은 대답에 태윤의 미간이 즉각 꿈틀거렸다.

"너 오늘 태도가 왜 그래? 연말인데 좀 맞춰줄 수 없냐? 아, 하긴. 우린 애초에 너무 다르긴 해. 넌 너무 감정적이고, 난 좀 더 이성적인 타입이니까."

태윤은 마치 대단한 진리라도 발견한 양 팔짱을 꼈다. '다르다'는 말. 그건 태윤이 상대의 입을 막고 싶을 때 던지는 전용 방패였다. 그 방패 뒤에서 그는 언제나 이기적으로 굴었고, 지수는 매번 그 방패를 뚫으려다 상처 입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지수는 가방 속에서 미리 준비한 작은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 안에는 그가 좋아하던 브랜드의 향수와 짧은 메모가 들어 있었다.

"태윤아, 네 말이 맞아. 우린 너무 달라."

지수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너는 네 기분이 세상의 기준인 사람이고, 나는 그런 너를 참아주는 게 사랑이라고 믿었던 사람이지. 근데 이제 그 역할, 사표 내려고."

태윤의 입술이 경련하듯 움직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지수는 그가 입을 열어 '전문가다운' 반박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말까지 고마웠어. 네 고집, 네 기분, 네 기준들... 이제 다 네가 원하는, 너랑 똑같은 사람한테 가서 마음껏 뽐내면서 살아."

식당을 빠져나오자 차가운 겨울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등 뒤에서 태윤이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지수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거리는 연말의 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지수는 처음으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만 생각하며 가벼운 걸음을 옮겼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새해가 시작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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