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의 배는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같았다. 현우는 그 부드러운 감촉을 좋아했다. 퇴근 후 지아를 품에 안고 그 말랑한 온기를 느끼면 하루의 긴장이 다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온기 뒤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대화가 숨어 있었다.
"현우 오빠, 나 오늘 찍은 사진 봤어? 진짜 멧돼지 같지 않아?"
지아가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며 울상을 지었다. 현우는 익숙하게 방어 기제를 가동했다.
"무슨 소리야, 귀엽기만 한데. 나는 지금 네 모습이 제일 좋아." "거짓말. 나 예전보다 15키로 넘게 쪘어. 오빠 친구들 부인들은 다 날씬하던데... 나 내일부터 진짜 다이어트한다? 도와줄 거지?"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10kg을 감량하고 식단을 유지 중인 현우에게 다이어트는 의지의 문제였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돕는 일쯤은 기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지아의 손에는 설탕이 가득 묻은 도넛이나 액상과당이 듬뿍 든 에이드가 들려 있었다.
"오빠, 이것만 먹고. 오늘까지만 행복할래!"
행복하게 웃으며 디저트를 먹는 지아를 보며 현우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며칠 뒤, 지아는 다시 '외모 정병'의 굴레에 빠져 현우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현우는 이제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지아가 원하는 건 다이어트 방법이 아니라, '내가 나를 포기해도 너는 나를 포기하지 말라'는 끊임없는 확인이라는 것을.
그날 밤, 지아가 또다시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몸을 꼬집으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현우는 평소처럼 "괜찮아"라고 말하려다 멈췄다. 대신 지아의 곁으로 다가가 거울 속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아야, 내가 진짜 솔직하게 한 번만 말해도 될까?"
지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현우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100kg이 돼도 너라는 사람을 사랑해. 그건 변하지 않아. 근데 지아야, 네가 너 스스로를 미워하면서 나한테 '나 못생겼지?'라고 물을 때마다, 네가 미워하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내 마음은 갈 곳이 없어져."
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네가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가 다음 날 무너지는 건 괜찮아. 사람이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네가 무너진 뒤에 다시 스스로를 험담하고, 그 화살을 나에게 돌려 '그래도 예쁘다고 해줘'라고 반복하는 루틴이 이젠 나를 너무 지치게 해.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고 말해도 네가 너를 믿지 않으니까, 내 말은 허공에 흩어지는 소음이 되는 것 같아."
현우의 목소리엔 비난이 아니라 애달픈 피로함이 섞여 있었다.
"나는 네 배를 만지는 게 귀엽고 좋지만, 네가 그 배를 만지며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는 건 정말 고통스러워. 이제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약속 대신, 너 스스로를 괴롭히는 말을 나에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줄 수 없을까? 네가 진심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싶을 때 내가 도와줄게. 하지만 하기 싫다면 안 해도 돼. 다만,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미워하는 그 말들로 우리 사이의 행복한 시간을 갉아먹지는 말자."
지아는 현우의 눈에서 처음으로 '지친 진심'을 읽었다. 무조건적인 긍정이 사랑인 줄 알았던 현우가 처음으로 내민 '경계선'이었다. 지아는 현우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설탕 냄새가 아닌, 조금은 차갑고도 단단한 현우의 진심 어린 향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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