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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짧은 글

3월의 끝자락

by 감성좋아 2025. 3. 16.

3월의 끝자락, 겨울의 찬 기운이 여전히 남아 있는 아침, 은수는 고요한 거리에서 발걸음을 떼었다.

60대가 된 은수는 이제 눈에 띄게 느리게 걸었다.

그녀의 몸은 더 이상 젊지 않았고, 그동안 겪은 수많은 세월 속에서 온갖 고단함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외로움 속에서 어느 순간, 재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따스한 미소와 함께한 시간이, 이제는 가슴 속 깊이 묻혀버린 그리움으로 변해 있었다.

그와의 사랑이 무엇이었을까? 20대의 뜨거운 사랑을 떠올리며 은수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때 그들은 세상 무엇도 두렵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서로를 사랑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충분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순수하게 시작된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그녀가 젊었을 때, 재현과 함께한 시간들은 햇살처럼 따뜻했지만, 그 후엔 그만큼 추위가 따랐다.

사랑을 했다면 이별도 있었다. 재현은 은수에게 점점 멀어졌고, 그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떠났을 때, 은수는 고백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남겨졌다.

그녀는 그가 왜 떠났는지,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몇 년을 보냈다.

40대가 된 은수는 그리움과 후회의 시간을 보내며, 어느덧 재현이 떠난 자리가 너무 커져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삶은 그만큼 그녀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

일과 가정을 돌보며 살아가던 중, 우연히 재현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은수는 가슴 속에서 이상한 떨림을 느꼈다.

그녀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오래된 그리움이 무엇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몇 달을 고민하던 은수는 결국 그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길게 내리쬐는 봄 햇살 아래, 은수는 그의 집이 있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 너무 많았기에 그녀는 그를 만날 자격이 있을지 모를지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재현의 집 앞에 서자, 은수는 잠시 멈췄다.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이제 어떤 모습일까? 나이를 먹어 다소 변했을까? 아니면 여전히 그때처럼 고요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까?

문을 두드리자, 재현이 문을 열었다. 그 얼굴은 오랜 세월을 지나온 듯, 나이든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그에게서 풍기는 차가운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은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의 얼굴에서 여전히 느껴지는 그리움과 미안함이 있었다.

"은수… 오랜만이야."

"그래… 오랜만이네. 재현아." 은수의 목소리가 떨리며 나왔다.

그동안 마음속에서 꾹꾹 눌러왔던 감정들이 이제서야 흘러나오는 듯했다.

"어떻게…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재현은 조용히 물었다.

그 말 속에는 그리움이, 그리고 은수를 떠나보낸 죄책감이 묻어 있었다. 은수는 잠시 숨을 고르며 고백했다.

"그때 왜 떠났어? 내가 그걸 너무 모르겠어. 그게 너무 아파서…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어." 은수의 목소리는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아픔을 털어놓는 듯했다.

"나는… 내가 너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웠어.

네가 나와 함께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지, 내가 너에게 짐이 될까 봐 걱정했어.

그래서… 멀리 떠났지. 너를 놓아주는 게 너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어."

그 말을 듣고 은수는 눈물이 났다.

그가 그렇게 떠난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그가 자신을 떠난 이유는 자신을 사랑해서였다는 사실에, 은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그녀도, 그도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너무 늦었어, 재현아.

나는…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해.

그때가 너무 아파서 다 잊으려고 했지만, 나도 너를 놓지 못했어." 은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이 무언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했다.

재현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예전처럼 따뜻하고, 그 깊이의 사랑이 느껴졌다.

그 순간, 은수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꼈다.

그들이 함께한 그 순간, 그 사랑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사랑해, 재현아." 은수는 속삭였다.

"미안하다, 은수. 내가 너를 아프게 해선 안 되었어.

나는 늘 너를 사랑했어." 재현은 은수의 눈을 마주 보며 고백했다.

그날, 은수와 재현은 서로의 상처를 나누며 조금씩 다가갔다.

비록 다시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지나간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너무 소중했기에,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그리움 속에서도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3월의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아픔에 얽매이지 않고, 그들이 함께한 모든 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웠음을 서로 인정하며, 눈물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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